찰스 3세 영국 국왕과 카밀라 왕비가 오늘 오타와에 도착해 역사적인 2일간의 국빈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이번 방문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의 병합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캐나다의 주권을 강하게 재확인하는 상징적인 행보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일정은 찰스 국왕이 즉위 후 처음으로 캐나다를 방문하는 것으로, 그의 방문 자체가 캐나다의 독립적인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메시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국빈 방문 일정은 캐나다가 영연방 내에서 독립된 국가임을 강조하는 여러 행사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중 하이라이트는 5월 27일로 예정된 ‘왕좌 연설(Speech from the Throne)’로, 찰스 국왕은 제45대 캐나다 의회의 개회를 공식 선언하게 된다. 현직 군주가 캐나다에서 직접 왕좌 연설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마지막 사례는 1977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방문이었다.
이번 방문을 요청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그 상징성과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는 “우리의 주권이 도전받고 있는 시기에 국가 원수가 새 의회의 개회를 선언한다는 것은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며 “전 세계가 주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표현하는 등 반복적이고 경시적인 발언을 해온 데 대한 강경한 대응이다.
오늘 오후 오타와 국제공항에 도착한 국왕 부부는 메리 사이먼 캐나다 총독과 마크 카니 총리, 원주민 지도자들의 환영을 받았으며, 이는 캐나다 모든 국민과 왕실 간의 깊은 유대감을 상징한다. 왕실 근위대인 로열 캐나디언 드라군스의 명예 경호대가 참여한 공식 환영식은 캐나다의 독립적인 군사 및 헌법 전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찰스 국왕과 카밀라 왕비는 란즈다운 파크에서 다양한 지역 공동체와 예술가들을 만나며 국민과의 소통에도 나설 예정이다. 또한 총독 관저인 리도 홀에서 나무 심기 행사를 진행하며, 이는 캐나다 입헌 군주제의 성장과 지속성을 상징하는 의식이다. 카밀라 왕비는 이번 방문 중 국왕의 캐나다 추밀원(Privy Council)에 공식 선서하며, 캐나다 국정에 대한 공식적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예정이다.
한편 캐나다 국민들 사이에서 군주제에 대한 의견은 다소 엇갈리고 있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찰스 국왕 개인에 대한 호감도는 다소 상승하고 있으며, 군주제가 캐나다 주권을 강화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폴라라 전략 인사이트(Pollara Strategic Insights)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8%가 찰스 국왕의 왕좌 연설이 캐나다의 주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반면,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은 22%에 그쳤다. 또한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자는 여론도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찰스 국왕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닌 국가 원수로서 트럼프의 발언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그가 왕좌 연설을 하며 캐나다를 방문하는 그 자체가 강력한 상징적 메시지가 된다. 왕실 역사학자 캐롤린 해리스는 “찰스 국왕은 캐나다 경찰의 호위를 받고, 캐나다 상징에 둘러싸인 캐나다적 맥락 속에서 보여질 것”이라며 “그는 캐나다의 국왕으로서 이 자리에 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외교적 행보는 미국과 영국 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서 캐나다 정부는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가 트럼프에게 국빈 방문을 초청한 사실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한 바 있다. 이번 찰스 국왕의 방문은 캐나다의 정체성과 입장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에 캐나다-미국 관계의 균형을 다시 조율하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왕좌 연설 이후 국왕과 왕비는 국가 전쟁기념비(National War Memorial)를 찾아 전몰 장병을 추모하고, 무명용사의 묘 건립 25주년을 기념할 예정이다. 캐나다 왕립공군(RCAF)의 공중 비행 퍼포먼스는 캐나다의 독립적인 군사력을 강조하는 또 다른 상징이 될 것이다.
찰스 국왕의 이번 국빈 방문은 캐나다를 정의하는 역사적 유대와 헌법적 구조를 재확인하며, 캐나다의 주권을 오해하거나 과소평가하려는 이들에게 명확하고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