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사이즈에 갇힌 여성들] ②저체중 강박에 병든 여성들, 정부 입장은?
[S사이즈에 갇힌 여성들] ②저체중 강박에 병든 여성들, 정부 입장은?
  • 심정민 기자
  • 승인 2018.09.10 1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S사이즈 감옥에 갇혔을까. 미디어는 뼈가 앙상한 몸으로 연기하고 춤추는 여자 연예인들을 미의 기준으로 삼고 대중이 찬양하게 만든다. 이에 따라 의류 매장에서는 아동복 수준의 작은 옷을 프리사이즈라고 판매한다. ‘50kg가 넘는 여자는 수치’라는 헛소리까지 나오니, 여자들이 살을 빼지 않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저체중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2016년에는 16%의 20대 여성이 저체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열망은 강박이 되고 질병으로 이어진다.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저체중의 민낯을 들여다 본다. -편집자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18세 고등학생 송은지 양은 최근 폭식하는 일이 잦아졌다. 방학을 맞아 다이어트를 시작한 게 화를 불렀다. 송 양은 키 171cm, 몸무게 54kg의 상태다. 부모님은 딸이 너무 말랐다고 주장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학교에 자신보다 더 마른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급식 대신 다이어트용 칼로리바를 먹거나 보조제를 먹는 게 유행이다. 송 양도 친구들을 따라 다이어트에 합류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학교에서 굶다 집에 돌아오면 오히려 식욕을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다. 하교 후 밤 늦게 음식을 급히, 많이 먹는 날이 늘어나니 몸이 무겁고 아침마다 힘이 든다. 마음은 또 우울해지고 송 양은 어쩔 수 없이 간식을 찾는다.

#20대 중반의 직장인 여성 김현아 씨는 신장 165cm에 몸무게 48kg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다이어트가 일상이 된 덕분이다. 사람들에게 ‘몸매가 예쁘다’는 말을 듣지만 정작 본인은 다이어트 전, 통통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두렵다. 김 씨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체중을 재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준치에서 0.5kg이라도 넘어서면 하루종일 굶는다. 친구들과 약속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맛집에 가기 전에는 며칠동안 식단을 조절한다. 뿐만 아니라 식욕이 돋는 생리 전주에는 식욕억제제까지 복용한다. 이 때문에 변비가 생겨 괴롭기도 하지만 이미 습관이 된 다이어트를 도무지 끊을 수 없다.

권진원 경북대 약대 교수와 박수잔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2007∼2014년)에 참여한 19세 이상 성인 4만3833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상체중 여성 중 20%가 스스로를 과체중이라고 여겼으며 1.1%가 비만에 속한다고 오인했다. 또 2015년 1월 닐슨이 발표한 ‘건강과 웰빙에 관한 글로벌 소비자 인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 60%가 자신을 과체중으로 인식했다. 세계 평균(49%)보다 약 10%P 더 높은 수치다.   

(사진=EBS 방송화면)
(사진=EBS 방송화면)

 

전문가들은 작금의 세태가 미디어가 규정한 ‘예쁜 몸’의 전형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미용 체중’이 결합되어 낳은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학계에서는 체질량지수(BMI)에 따라 저체중·정상·과체중·비만·고도비만을 나눈다. 굳이 따지자면 미용체중은 여기서 저체중에 해당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보기 좋은 것’에만 초점을 맞춘 수치여서 그렇다. 게다가 ‘보기 좋다’는 기준도 주관적인 것이어서 더욱 신뢰도가 떨어진다. 이뿐만 아니다. 이른바 ‘옷발 잘 받는 체중’도 있다. 여성환경연대가 국내 의류브랜드 31곳을 조사한 결과, XL 이상 사이즈가 있는 브랜드는 2곳이었으며 프리사이즈로 판매되는 의복은 실제 S와 M사이즈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터무니 없는 도표 속 체중이 사회의 기준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취업시장에서도 심하게 나타난다. 최근 국내의 한 중견회계법인이 대표이사의 비서를 모집하면서 필수 자격요건으로 ‘외모가 준수한 항공사 스튜어디스 출신’을 제시해 빈축을 샀다. 항공사 스튜어디스는 키와 몸무게 제한을 받는 직업군 중 하나다. 또 의류·패션업계는 신입 디자이너나 인턴 디자이너 등을 채용할 때 외모를 보는 게 관행이다. 채용사이트에 올라온 입사지원서 대다수가 구직자들에게 키와 몸무게는 기본, 가슴·허리·엉덩이둘레까지 공개를 요구했다. 한 기업은 특정 신체 사이즈를 충족하는 경우에만 지원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구직자 420명을 대상으로 자사한 결과 ‘외모 좋은 지원자에 질문이 집중될 때’ 피해를 본다고 느낀 이가 전체의 40.2%를 차지했다. 이어 ‘외모 관련 질문을 받을 때(30.4%)’ ‘외모에 대해 대놓고 지적 당했을 때(24.5%)’ ‘다른 지원자의 외모를 칭찬할 때(22.3%)’ 등이 차례로 나타났다. 또 응답자 95.5%가 채용시 외모가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겼으며, 그 중에서 체형(몸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응답자 비율은 14.2%에 해당했다.

(사진=채널A 방송화면)
(사진=채널A 방송화면)

 

■ ‘저체중 강박’ 사회… 병든 여성들, 책임은 어디에

사회의 요구는 저체중 강박으로 이어져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섭식장애로 치료받은 환자는 1만3918명으로, 여성 환자가 81%의 비중을 차지했다. 의료계에서는 정신질환 특성상 치료받지 않는 섭식장애 환자가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음과마음 식이장애 클리닉의 김준기 대표는 “섭식장애의 범위는 넓다. 우울증이나 불면증·신경과민·대인기피 등을 동반하는 경우도 상당수”라며 “누구나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 매체에서 아름다운 여성의 몸매를 획일화해 끊임없이 주입하고, 이로 인해 개인의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섭식장애를 앓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가벼운 폭식증의 경우 비만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비만 클리닉에서는 오히려 식욕을 억제하는 약을 처방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섭식장애가 심하게 악화될 경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대표는 이어 “다이어트 약품이나 보조제의 부작용으로 섭식장애를 얻은 환자도 많다”고 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다이어트 제품에 들어가는 펜터민(phentermine) 성분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식욕 억제 효과를 낳는 성분으로 비만 치료제로 자주 사용되는데 중추신경을 흥분시키면서 불면증이나 불안감·우울감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기 복용 시 더욱 위험해진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달 정량의 4배가 넘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여성이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 적도 있다. 피의자의 가족들은 피의자가 15~20kg 정도 체중을 감량한 뒤부터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지난해에는 다이어트 약을 장기간 복용하던 30대 여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발생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지난 4월부터 다이어트 제품 안전 기준 강화에 나선 상태다. 가르시니아캄보지아 추출물·프로바이오틱스 등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4종에 대한 섭취시 주의사항과 녹차추출물의 일일섭취량 중 EGCG(에피갈로카테킨갈레이트) 제한량을 신설하고 프로바이오틱스 제조방법을 개정키로 했다. 또 허위·과대광고를 하거나 제품 표시사항에 원재료 함량을 속여 판매한 다이어트 식품 제조 및 판매업체를 적발해 고발 조치하기도 했다.

저체중 강박으로 인한 질병만 문제가 아니다. 저체중 여성의 경우 45세 이전에 조기폐경을 겪을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관련한 정부의 관심과 정책이 절실한 배경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달 국내 비만 인구 비율이 34%를 넘는다는 이유로 ‘국가 비만관리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콜레스테롤혈증·고혈압 등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이 높아질 경우 사회적 비용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비만 인구 비율은 OECD 가입 국가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저체중 관련 정책이 미비한 데 비판이 따르는 이유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관계자는 “국회나 학계에서 비만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관련 정책이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저체중 정책에 관련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담당하는 부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