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보인다] 괴로운 삶의 현실을 바꾸는 기적의 지우개
[알아야 보인다] 괴로운 삶의 현실을 바꾸는 기적의 지우개
  • 문하영 기자
  • 승인 2019.08.05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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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당연히 여기는 이들은 많아도 ‘어떻게’ 더불어 살지에 대해 생각해본 이는 드뭅니다. 이에 더해 경제 악화, 계층 간 격차 심화, 노령화 등 다양한 사회현상들은 사회공헌의 필요성과 가치를 높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각종 사회공헌 분야 면면을 들여다보면 천편일률적 방식들이 실질적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정책 역시 미비하거나 정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죠. 많이 알수록 넓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함께 사는 세상 역시 효율적이고 현명한 방법과 생각들이 모여 이뤄집니다. 이에 위어스는 [알아야 보인다]를 통해 다양한 해외 사회공헌 활동들을 조명하고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국내에서 활용해볼 만한 활동 및 정책들을 살펴 더 나은 사회 구현에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편집자주

사진=플랜 영상 캡처, 학교가는 아이들 사이로 타이어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
사진=플랜 영상 캡처, 학교가는 아이들 사이로 타이어를 옮기는 일을 하고 있는 여자아이

한 사람의 삶의 슬픔, 분노, 억압된 현실을 지우개로 지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 무척 비현실적인 일이지만 그럴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부분은 아주 많을 겁니다.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마법의 지우개는 현실에 없지만 상징적 의미로 고통받는 여자아이들의 삶을 바꾼 지우개는 있습니다.

지난 2013년 해외서 시작된 NGO단체 플랜(PLAN)의 지워지는 광고판(Erasable billboard)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시청 앞에 재봉틀을 돌리고 있는 여자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커다란 광고판이 설치됐습니다. 교육 받지 못하는 세계의 수많은 여자 아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만든 것이지요. 그 옆에 설치된 부스에서 기부에 서명을 한 사람들은 지우개를 받게 됩니다. 기부에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은 사은품은 아닙니다. 바로 재봉틀 앞에 앉아 하루종일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여자 아이들의 그림을 지워내는 행위를 시민들이 직접 해야 합니다. 플랜이 특수 잉크로 제작한 이 그림 앞에서 시민들은 손가락 두 마디 크기도 채 되지 않는 지우개를 들고 부분부분 그림을 지워나갑니다. 그러면 그 밑에서 새로운 그림이 나타납니다. 공장이 아닌 학교에서 연필을 들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죠. 가장 아이다운 모습, 아이가 있어야 할 곳을 그린 이 그림이 나타날 때까지 수많은 시민들이 기부에 참여하고 공장의 아이들 그림을 지워나가야 했습니다.

사진=플랜 영상 캡처
사진=플랜 영상 캡처

그러나 생각보다 이 그림에 관심을 갖는 이들은 많았습니다. 굉장히 많은 이슈를 얻은 이중의 그림은 개인 후원 50% 증가라는 놀라운 결과를 도출해냈습니다. 이에 더해 이벤트만으로 6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렸고 4억여 원 규모의 홍보효과를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금액들은 모두 빈곤국가의 여자아이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전세계 여자아이들 중 7500만명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연필 대신 가정의 생계를 위해 공장으로 출근하죠. 더욱이 빈곤국가일수록 성별 차별이 심각합니다. 남자아이의 교육이 여자아이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더더욱 교육에서 멀어져 고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때문에 플랜이 이같은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세계 곳곳에서 줄이어 지우개로 기부하는 풍경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지난 2015년에는 국내에서도 ‘전국 대학생 북한인권주간’을 통해 바로 이 ‘erasable billboard’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사진=플랜 영상 캡처
사진=플랜 영상 캡처

사람들은 지우는 광고판을 보며 어떤 마음을 갖게 됐을까요? 수많은 기부 도모 광고들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꿈쩍도 않던 사람들은 지우개 하나에, 그림 한 점에 마음을 움직인 걸까요? 전문가들은 이 프로그램의 성공을 두고 ‘직관적이기 때문’이라 평가합니다. 지우개로 직접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지우는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의 기부로 공장에 삶을 버려야 하는 여자 아이들을 줄여나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는 거죠. 그림이 변화하는 만큼 자신의 기부가 한 아이의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직접 목격한 효과는 액수로 입증됐습니다.

당시 ‘지워지는 광고판’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평범한 기부보다 훨씬 더 큰 심리적 만족감을 얻었다는 후기들을 내놓았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이 더 많은 기부를 이끌어내고 보다 높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명백하게 방증합니다. 우리 주변의 기부 도모 광고나 프로그램들은 어떤가요? 여전히 과거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거나 온정에만 호소하는 정책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단순히 “도와주세요”란 문구와 영상 대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효율적 정책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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