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당하려 태어난 사람은 없다"…한국 결혼이주여성 인권의 현주소
"폭력 당하려 태어난 사람은 없다"…한국 결혼이주여성 인권의 현주소
  • 문하영 기자
  • 승인 2019.07.09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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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남편은 옛날에 권투를 연습했다. 남편이 샌드백 치듯 나를 때렸다. 맞을 때마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

남편에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세상에 공개한 베트남 여성 A씨(30)의 발언이다. 그는 베트남 현지매체 ‘징’과 인터뷰를 통해 이처럼 말했다. 그가 밝힌 폭행의 이유는 남편이 요구한 것과 다른 물건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었다. 그의 남편 B씨(36)는 경찰조사에서 언어가 달라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면서 감정이 쌓이며 폭행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6일 A씨가 직접 찍은 영상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이 사건은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에 대해 우리 사회가 고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안겼다.

국내 결혼 이주민은 30만명에 달한다. 이 중 80%가 여성이다. 최근 20년간 매년 2만여 명에 가까운 한국이주여성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사회전반적으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을 보편화시켰고 국내에서 국내민 못지않게 활발한 활동을 하는 등 ‘안착했다’는 평가가 이어져왔던 바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결혼이주여성들의 인권 사각지대가 이제야 조명됐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사진=YTN 방송화면 캡처

■ 폭력이 가장 빈번, 피해자들이 '신고? 무소용'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남편 가족으로부터의 홀대와 무시, 자녀양육·가내경제 등에 대한 의사결정권 상실, 과도한 가사노동 등 수많은 요인들이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을 핍박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 이번 베트남 여성폭행과 같은 폭행 피해는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다.

일례로 지난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결혼이주민의 안정적 체류 보장을 위한 실태조사’에서 응답한 결혼이주여성 중 42.1%가 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밝혔다. 욕설이 81.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한국 생활 방식 강요(41.3%), 폭력 위협(38%), 생활비 미지급(33.3%), 성행위 강요(27.9%), 부모·모국 모욕(26.4%) 등 폭력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생활비 지급 단절, 본국 방문 및 본국 송금 방해, 외출 방해, 심지어 가내감금 등과 같은 가정폭력을 당한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에서도 성격, 경제적 이유에 이어 학대와 폭력이 다문화가정의 이혼 별거를 부르는 중대요인으로 꼽힐 정도. 결혼이주여성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많이, 자주 폭력에 노출돼 있는 상태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간한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폭력피해 이주여성들의 생존 분투기’를 통해서도 이주여성들의 현실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통제, 경제적 착취, 물리적 폭력, 양육권 문제, 체류권 등에 대해 자신이 겪은 부당한 일들에 대해 세세히 밝히고 있다. “외국인은 통장도 못 만드는 줄 알았다”거나 “한국에 와서 더 고생할 줄 몰랐다”, “물리적 폭력을 당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등의 발언은 한국이주여성들의 적나라한 피해사실들을 말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폭력에 노출된 이들 다수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이들이 밝힌 ‘아무 효과도 없을 것 같아서’(20.7%)라는 이유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삶을 외면해 온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추고 있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 회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결혼이주여성들이 신고를 하지 못하는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그는 우선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서 신고하는 법을 모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는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처벌을 받은 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왕 회장은 “벌금형이 가장 많다. 그런데 벌금을 내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아야 하지 않나.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벌금이 결국 가정의 돈이라는 점을 알고 철회하는 경우가 있고, 2차 3차 피해가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결혼이주여성은 결혼비자로 입국하게 된다. 이후 체류기간을 연장해가며 국적 취득에 이르게 된다. 결혼이주여성의 족쇄라 불렸던 신원보증절차는 인권 침해 이유로 2011년 폐지됐지만 비자 연장이나 영주권 신청 등을 할 때 신원보증이 필요하는 등 한국인 배우자의 비중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만약 결혼이주여성의 가족들이 남편의 초청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면 남편의 권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혼과정 역시 불리하다. 결혼이주여성이 부당한 결혼생활을 참지 못해 이혼하려 해도 피해자라는 증거를 직접 수집해 재판에서 완벽하게 입증해야 하며 양육권 문제에 있어서도 결코 유리하지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번 폭행 영상 역시 A씨가 이런 상황까지 고려해서 촬영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처럼 결혼이주여성은 ‘합법적 체류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남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부분이다. 결혼이주여성 인권단체들이 “정부가 한국인 배우자에 권력을 쥐어줬다”고 꼬집는 절대적 이유이기도 하다.

사진=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발간 피해사례와 분석 조언 관련 도서.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홈페이지 캡처
사진=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홈페이지 캡처

■ 정치권, 인권단체, 정부부처 "이대로는 안된다" 변화의 움직임

다행히 A씨가 무참히 짓밟힌 영상을 계기로 사회적 변화가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높은 상황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사건 직후 철저한 수사와 피해회복을 약속했다. 이를 두고 결혼이주여성 관련 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본보기가 돼 앞으로 결혼이주여성 인권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더 나아가 배우자에 종속되는 관계 속에서 인권이 짓밟히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일 입장문을 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체류 연장, 귀화와 같은 결혼이주여성 체류에 있어서 배우자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일부 한국인 배우자들은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통제의 수단으로 불안정한 체류 지위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결혼이주여성은 제도적으로 한국인 배우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상태로 불안정한 체류와 관련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너도나도 논평, 브리핑 등 입장을 밝히며 “안정적 체류권 보장과 더불어 이주여성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폭력 방지대책을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임시국회에서 가정폭력 관련법을 대폭 개정해보겠다”(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 여성들을 위한 철저하게 강화된 정부의 정책 마련 시급”(노영관 바른미래단 부대변인), “현재의 신원보증제도에 대한 개선과 함께 이주여성인권센터와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의 지원 기관의 활동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등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호법, 조두순법 등 지금껏 정치권이 그래왔듯 대중적 관심을 받는 사안에 편승해 당 지지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사회에 긍정적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면 옳은 일이라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 결혼이주여성들의 인권 신장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여성가족부는 이주여성 피해자들의 상담을 위해 ‘폭력피해 이주여성 상담소’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달 대구와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를 ‘폭력피해 이주여성 상담소’ 운영기관으로 지정했고 7월 중 인천과 충북에도 개소할 계획이다. 이주여성 상담소는 가정폭력, 성폭력 등으로 가정해체, 체류 불안정 등 복합적인 위기를 겪는 이주여성들에게 상담과 임시 보호, 의료·법률지원 등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주여성은 한국어 및 출신 국가 언어로 상담과 통·번역, 의료·법률 등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약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 피해를 봤거나 이러한 상황을 목격한 경우 가까운 경찰서나 여성가족부 산하 다누리콜센터(1577-1366)에 신고할 수 있다. 다누리 콜센터는 쉼터 제공과 함께 이혼무료법률상담, 취업을 위한 직업교육 등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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