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말아요]⑥ 이승현 감독 "日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의 이름과 삶 알리고 싶다" (영상)
[잊지말아요]⑥ 이승현 감독 "日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의 이름과 삶 알리고 싶다" (영상)
  • 곽승하 기자
  • 승인 2019.06.27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켜줄 나라가 없어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할머니들. 젊은 날을 눈물의 세월로 보낸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의 한과 아픔을 어루만져 드리고 싶은 마음 하나로 오늘도 이 역사를 알리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본지는 ‘연재기획 인터뷰 [잊지말아요]를 기획, 이들의 의지를 전하려고 한다. -편집자 주

최근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의 특별한 일상을 담은 휴먼 다큐 영화 ’에움길‘이 개봉했다. 이 작품 감독인 이승현은 영화 ‘귀향’에서 착한 일본군 다나카 역으로 출연해 시선을 모았던 배우이기도 하다.

이승현 감독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길 희망했다. 투쟁과 절규만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에움길’을 통해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들의 삶을 알게 되길 바랐고, 이를 작품에 담았다.

“사랑스러운 할머니들의 삶을 보며 가족애를 느끼게 되면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는 사회적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된다”며 “그래야만 할머니들이 계시지 않더라도 잊히지 않을 거다. 우리 할머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고 연출 의도를 밝힌 이승현 감독을 본 연재 기획 인터뷰 ‘잊지말아요’의 여섯 번째 주인공으로 택했다.

▲ ‘에움길’의 사전적 의미가 ‘굽은 길’이더라. 제목을 정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나도 처음 접한 생소한 단어였어요. 처음 시작은 할머니들의 이야기인 만큼 제목을 순우리말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여러 단어를 찾던 중 ‘굽은 길’을 뜻하는 ‘에움길’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죠. 그 단어를 곱씹으니 할머니의 굽은 등이 연상되더라고요. 또 힘겨운 나날을 보내온 할머니들의 삶이 ‘에움길’과 닮아있다고 생각됐고,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순탄치 않은 길도 에움길 같아 제목으로 하게 됐어요”

▲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의 역사가 담긴 기록 영상들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발견은 아니고 ‘나눔의 집’에 보관돼 있던 자료의 일부를 조정래 감독님과 방문하면서 보게된 거예요. 그후 방대한 양의 비디오와 사진이 보관돼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가늠이 안 될 정도로 양이 많더라고요. 그걸 보관소에서 대여해 데이터 작업을 하고 영상을 확인하면서 ‘이게 어마어마한 자료구나’라는 걸 깨닫게 됐죠. 영상을 보며 신기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우리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마주하면 현재의 모습만을 기억하지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긴 쉽지 않잖아요. 할머니들의 20년 전 영상을 보는데 그때도 할머니셨지만 지금보다 젊고 활력있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고, 지금 모습과 대비되며 아프기도 했어요”

▲ 1600여 개의 테이프와 CD의 디지털 작업, 영상 편집 및 추가 촬영을 통해 ‘에움길’을 제작했다고 들었어요. 힘들지 않았나요?

“테이프의 디지털화 작업을 대략 1년 정도 했던 것 같아요. 편집을 진행하면서도 그 작업은 계속됐죠. 시간은 걸렸지만, 단순 작업이다 보니 디지털 작업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스크립트를 만들기 위해 각 장면의 상황, 대화, 시간을 적어 문서화 하는 게 가장 힘든 작업이었어요. 날 포함해 9명이 영상을 분배해 문서화 작업을 했는데, 할머니들의 장례식 영상을 누가 가져가느냐를 놓고 눈치를 많이 봤죠. 할머니들의 오열과 절규 등이 담긴 장례식 영상을 반복해 보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걸 본 사람은 마음이 아파서 한동안 패닉에 빠지기도 했어요”

▲ 촬영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촬영 시작 전 어려움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제작진의 규모가 좀 있었거든요. 몇 대의 카메라에 조명까지 준비해서 갔어요. 막상 촬영하려고 보니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의 생활공간인데, 남자 스태프들이 우르르 몰려가 장비를 세팅하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게 불편하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촬영팀을 다 철수시키고 한 달 정도를 매일 혼자 캠코더 한 대만 들고 찾아갔죠. 그조차도 촬영에 집중하기보다는 할머니들과 함께 TV를 보고 밥을 먹으며 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할머니들께서 어느 정도 마음을 여셨을 때 본격적인 촬영을 할 수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보다는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된 2편의 영화 ‘귀향’ ‘에움길’에 배우와 연출로 함께 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영화 ‘귀향’의 영향이 제일 컸어요. 이 문제를 잘 몰랐을 때도 ‘귀향’을 연출한 조정래 감독님의 진정성을 느껴 초창기부터 함께할 수 있었어요. 이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를 알아가고,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고, 친해질수록 이 문제에 더 집중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이옥선 할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을 디테일하게 담았어요. 의도가 있나요?

“20여 년간의 기록물을 편집한 영상이기에 이옥선 할머니의 꿈을 주제로 잡은 거예요. 할머니가 잠이 드시면서 과거 이야기로 들어가고, 잠에서 깨며 현실 장면을 배치했죠. 또 이옥순 할머니의 내레이션을 통해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이옥순 할머니의 꿈에 들어가 할머니들의 일상을 경험해볼 수 있게 장면을 배치했어요”

▲ ‘에움길’에 대한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일단 주인공인 이옥선 할머니 반응을 말하자면 무심한 듯 애정을 드러내 주세요. 개봉 전에 영화를 몇 번 보셨는데, 볼 때마다 내게 ‘별로다’라고 장난식으로 말씀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나중에 ‘나눔의 집’ 관계자들에게는 ‘옛날 생각이 나고 군자(고 김군자 할머니)가 떠오른다’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뿌듯함을 느꼈어요. 그밖에 시사회에 대한 반응은 아직까지는 좋은 반응이 많아요. 일본에서도 시사회를 가졌는데, 특별한 여성을 삶에 공감해 눈물을 흘리는 분도 계셨고요. 그 모습이 내게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 ‘에움길’이 다수의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했어요. 첫 연출작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아요?

“해외 영화제의 수상은 당연한 거라 생각해요. 할머니들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상들을 받을 수 있었던 거죠. 워낙 대단한 삶이잖아요. 수상하지 못한 영화제도 있는데 그 건 내 실력이 부족해서인 거 같고요.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해 영광스럽기도 하고 자부심도 들어요. 연출적인 부분에 대한 자부심이 아닌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 문제를 외국에 조금이라도 알린 것에 대한 자부심이요. 영상에는 등장하시는데 실제로 뵙지 못한 할머니들이 계세요. 그분들에게 자랑하고 칭찬받고 싶어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외국에 알렸다는 말이에요”

▲ 2년 간의 ‘에움길’ 작업 중 많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어요.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나눔의 집’을 방문해 ‘에움길’ 작업을 진행하는데 할머니께서 한 분씩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마음이 급해지기도 했죠. 빨리 작업을 마무리해서 할머니들이 더 돌아가시기 전에 많은 사람에게 보여줘야겠다는 다급함이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신중해졌어요.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영상인 만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할머니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는 걱정 때문이었죠. 또 좌절감도 컸어요. 개봉 전에도 할머니들께서 한분씩 돌아가시니 살아계실 때 보여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만든 좌절감이었어요”

▲ ‘에움길’을 통해 얻고 싶은 성과가 있나요?

“내가 느낀 걸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어요. 내가 본 할머니들의 삶은 고난과 역경만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아픔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존경스러운 삶을 사는 인생 선배의 모습을 봤고, 또 정겨우면서도 사랑스러운 할머니들의 모습도 많았어요. 이걸 공유하고 싶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라고 하면 책임감을 느끼고 무겁게 다가가잖아요. 이런 상황이 피로감을 키워, 오히려 할머니들의 문제를 더 멀리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시작을 정겹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통해 할머니를 알아가고 싶게 만들고 싶었죠. 관심과 애정이 커져 비로소 ‘우리 할머니’가 됐을 때,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선은 좀 더 많은 분에게 할머니들의 이름과 삶을 퍼뜨리고 싶어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